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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박지웅

오프라인 세상을 위한 구글 애널리틱스

투자자로서 투자를 하다보면, 창업자 만큼은 아니어도 이런 세상이 올 것 같다는 특정 시장의 변화와 사업모델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가설 기반의 투자 방식이 VC 업계에서는, 단순히 투자는 사람과의 만남, 누군가로부터의 소개와 추천을 통할 수 밖에 없다는,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과한 의존도가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에게 꽤 좋은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 또한 시작의 방식이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한 방식으로의 투자를 즐겨합니다.


다만, 이런 방식의 투자를 할 때 두 가지 난감한 점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시장의 변화와 사업 모델이 결국 오긴 하는데, 내 예상보다 늦게 오는 경우가 하나입니다. 내가 강하게 믿어서 확신의 정도가 끝까지 차올랐지만 시장의 adoption rate는 정작 몇년 뒤에 오는 경우, 사실 처음에 가졌던 그 확신과 믿음의 열기를 이후 몇년 동안 비슷하게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투자자인 내 마음을 빼앗는 흥미로운 시장의 변화와 사업 모델이 또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또한, 내가 생각한 시장의 변화와 사업 모델에 의거해서 선택한 그 팀이 시장에서 이기지 못하고, 다른 팀이 승자가 되는 경우가 또 하나입니다. 특히, 시장의 다른 팀들도 많이 만나본 다음에 이 팀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좀 더 낫겠지만, 불과 몇개월 차이로 나는 이미 이 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뒤늦게 등장한 어떤 팀이 시장의 승자가 되는 경우 참 난감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투자자로서는 훌륭한 가설을 가지고 당시 기준으로는 최선의 판단을 했지만,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물론 투자라는게 원래 다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좀 억울하죠 :) 


그래서 저는 이러한 가설 기반의 투자에 있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이밍 risk를 헷지해내기 위해선, 그 정도로 크고 비가역적 변화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개별 회사 risk를 헷지해내기 위해선, 개별 회사가 아닌 시장에 투자한다는 관점으로 계속 그 영역에 여러 회사들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게 이번 스페이스비전에이아이 투자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진행한 투자건이었습니다. 2013년 정도부터 제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게 된 가설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프라인 세상을 위한 구글 애널리틱스 - 라는 태그라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온라인 커머스의 침투에 대응하는 관점에서, 오프라인 리테일러들을 대상으로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신호, CCTV 카메라 영상 등을 활용해서 오프라인의 많은 고객들의 동선과 체류시간 등을 분석해서 알려주는 일종의 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플랫폼이 되겠다는 회사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회사들을 찾았지만 당시 한국에는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스톤브릿지에서 투자했던 애드바이미라는 회사가 아이템을 피벗해서 그 모델을 하겠다고 했고, 패스트트랙아시아로 옮긴 후 2014년에 다시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워크인사이트라는 브랜드로 진행했던 해당 사업은 성장세가 다소 더뎠고, 비슷한 시기에 한번 더 피벗을 했던 CRM SaaS의 성장세가 빠르게 진행되며 그 회사는 CRM SaaS에 올인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 회사가 바로 지금의 채널코퍼레이션입니다.


그 후에 시간이 좀 흘러 해당 가설에 대한 관심은 다소 식었습니다. 중국에서 SenseTime이라는 회사가 CCTV 영상들을 분석해서 꽤 큰 회사가 되었다는 얘기를 보긴 했지만, 이미 식어버린 관심에, 중국이니까 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하면서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2023년이 되어서 스페이스비전에이아이 라는 회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014년, 2015년 당시에는 컴퓨터 비전 기술로 영상을 실시간 분석해서 무언가를 분석해낸다는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 대부분은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를 활용했었습니다. 근데 그 후에 세상이 참 빠르게 발전하면서, 지금은 비전 기술을 활용해서 많은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제겐 너무도 쉽게 이해되는 사업의 내용이었고, 회사가 꿈꾸는 미래는 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흠뻑 빠졌었던 미래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애널리틱스 플랫폼과 하드웨어 기기를 리테일러들과 하나 하나 영업과 협상하며 설치해나가야 했던 모델들과는 다르게, 옥외광고 시장에서부터 매출 모델을 장착한 채 시작하는 것 또한 다르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다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과 스마트 기기들, 그리고 온 세상에 뒤덮여 있는 많은 디스플레이 장치들, 이러한 것들이 스마트해지고, 그 안에 흘러다니는 많은 종류의 데이터들이 AI 기반의 기술을 통해 분석되고 정제된다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습니다. 마치 지금 전세계의 모든 웹사이트 / 모바일 앱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구글 애널리틱스 없이는 안되는 것 처럼, 오프라인 세상에도 구글 애널리틱스가 (당연히) 필요하고, 이제는 존재할 수 있고, 앞으로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요?


이번 스페이스비전에이아이에 대한 투자는 저 개인적으로는 강하게 믿는 하나의 가설에 대해 투자하게 된 두 번째 회사인 셈입니다. 모든 사업 상의 가설은 타이밍이 문제가 됩니다. 맞는 말이지만 언제 그런 세상이 올 것이냐, 이건 사실 맞추기 불가능한 과제이기도 한데요. 이 과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세상이 정말 올 것이라는 확신이 강하다면, 계속 레이더를 유지한 채, 계속 그 영역에서 그 과제를 푸는 훌륭한 창업팀들에게 투자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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