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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박지웅

백지수표를 제안하다



21년 9월에 제가 어느 스타트업에 보낸 이메일을 발췌한 것인데요. 거의 백지수표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제안을 받은 곳이 엄청나게 높은 회사가치를 불렀다면 진짜 백지수표였을텐데… 내심 당연히 말도 안되는 숫자를 우리에게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회사에 대한 신뢰 (^^;)와 회사 측에서 제시할 만한 숫자의 maximum이어도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저의 확신이 결합해서 나온 이메일입니다.


이런 제안에도 불구하고, 당시 회사는 저희쪽 투자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교류하고 제안한 끝에, 저 이메일을 보낸지 1년반 정도가 지난 후 23년 늦은 봄, 실제로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투자 논의가 구체화되면서는 회사 가치에 대한 논의와 여러가지 부대조건에 대한 핑퐁이 있었지만, 함께 하는 것에 대한 대전제가 깔려있었기에 저희는 투자를 진행하고, 회사는 저희의 투자를 받아주시는 것이 큰 잡음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백지수표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회사는 ‘이너시아’라는 친환경 생리대를 제조/판매하는 스타트업입니다. 많은 분들이 EO 유투브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유니콘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저희와 이너시아의 인연을 알고 있으실 수도 있는데요. 위의 백지수표 제안은 유니콘하우스가 한창 진행되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느꼈던 임팩트가 강했고, 회사와 팀에 대한 확신이 상당했다고 보여지는 딜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알게 되었던 타이밍을 다시 돌아가서 떠올려보면, 유니콘하우스의 예선 심사장이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창업경진대회류의 심사가 그러하듯, 예선은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과정이기도 한데요. 저 또한 예선 심사에서 아주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기에 다소 심드렁한 상태로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확 깨는 발표를 듣게 된 것이 이 모든 인연의 출발이었습니다.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러 포인트들을 더 나열할 수도 있습니다만, 보통 어떤 회사에 빠져들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팀의 매력, 그리고 그 팀이 이야기하는 스토리의 매력 - 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세상에 비슷비슷한 비즈니스는 많지만, 결국 누군가는 차별화된 성과를 내곤 하니까요. 


저희가 백지수표를 내민 이후 1년반이 지나서 투자자로 이너시아의 주주가 되었고, 또 주주가 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회사는 한층 더 스텝업이 되어 더 흥미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사업이 전개되다보면 up & down이란게 있기 마련이어서, 결국 투자자의 믿음이라는 것은 up이 아니라 down에서 그 민낯이 드러날거라 생각하는데요, 그 때마다 저희가 백지수표를 제시했던 그 시점의 믿음과 신뢰를 다시 떠올리면서, 때론 냉철한 조언을, 그 밑바탕에는 창업팀에 대한 무한대의 신뢰를 리마인드 해야된다고 느낍니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투자도 당연히 경제적 임팩트를 생각해야 하지만, 그 교류와 up & down을 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단순한 투자수익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걸 항상 느끼게 됩니다. 이너시아와의 교류는 이제 갓 3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역경과 고난을 함께 헤쳐나가며, 결과와 무관하게 후회없는 여정이었다고 스스로 결론내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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