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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박지웅

2023년을 돌아보며, by 패스트벤처스

투자를 업으로 하다보면 서로 배치되는 명제 중에 어느 하나를 선뜻 택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생각보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되지만, 한편으론 오늘과 다른 내일에 베팅하는 벤처투자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생각치 못했던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창업팀의 믿음과 함께 하기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2023년은 투자자로서 난이도가 극상이었던 해였습니다. 격랑 같았던 2023년을 돌이켜보며 드는 생각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았습니다.


가치의 변동폭 << 가격의 변동폭


창업팀과 투자자 모두가 혼란스러운 지점이었습니다. 창업팀이 만들어낸 본질적 가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시장 참여자들의 공포와 환희의 혼합비율에 따라 심하게 왔다갔다 했기 때문입니다. 22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급격한 금리 상승은 금리의 절대치보다는 상승 속도가 주는 일종의 두려움과 공포가 실제보다는 다소 과장되게 시장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매일 매일 가격이 공표되는 상장 주식 시장에서는 항상 있어왔던 일입니다만, 아직 그러한 환경에 익숙치 않은 스타트업 시장의 참여자들에게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한해였습니다. 


내가 그럴줄 알았다니깐


사람들이 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낙관론자는 돈을 벌고, 비관론자는 명성을 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2023년 한해 동안 전해진 여러 스타트업들의 구조조정, 폐업, 파산 등의 소식과 함께 어느때 보다도 많은 비관론이 대두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스타트업들은 거품으로 먹고 사는 것, 제품 개발은 뒷전이고 마케팅비만 흥청망청 지출, 애초에 지속 불가능한 사업모델이었는데 투자 받은 돈으로 돌려막기, 회사란 본디 돈을 벌어야 회사인 법 등등 뼈아픈 지적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다 맞는 말입니다만, 대다수의 스타트업 창업팀들이 실제로 거품만을 노리고, 제품 개발을 뒷전으로 하며, 투자자들을 속이고, 회사의 본질을 이해 못한 것은 아니었을겁니다. 무작정 따뜻한 응원만을 기대하기엔 스타트업들도 스스로 입증해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탓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차갑고 뼈아픈 지적이라도 그 근간엔 관심과 애정이 뒷받침되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Open AI가 가져다준 환호성과 공포

 

유동성 축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건 사실상 Open AI의 하드캐리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체감하기론 창업하는 사람들의 절대 숫자가 다소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연초와는 다르게, Generative AI라는 새로운 파도가 주는 희망을 보고, 훌륭한 많은 분들이 기꺼이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Open AI가 시차를 두고 시장에 발표한 여러 기능들이 공개될 때마다, 대다수의 AI 스타트업이 생각했던 아이템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를 두고 AI 시장이 모바일과는 다르게 미국의 몇몇 빅테크들이 다 먹는 구조가 될 것이다 vs. 아니다, 모바일에 준하는 수준으로 큰 변화가 있기 때문에 기회의 창은 굉장히 크다 - 라는 상반된 두 가지 주장이 시장에 계속 공존해왔고, 이는 2023년 하반기 업계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주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창업의 양 vs. 창업의 질


거품을 통해 지금의 빅테크들이 탄생했다는 얘기는 역설적으로 많은 양이 먼저 등장하고 이를 통해 진화론처럼 질이 남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 2023년은 여러 각도에서 보았을 때, 창업의 양 자체는 다소간 줄었음이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입장에선, 창업의 질은 어느때보다도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창업을 통해 성공하는 것은 물론 운이라는 요소가 제일 크게 작용하겠지만, 운을 제외하고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단 한가지 요소를 꼽자면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그 끈기를 유지하기 위한 용기입니다. 2023년처럼 흉흉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던 분위기 속에서도 기꺼이 창업에 몸을 내던진 분들이야말로,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를 이미 갖춘 분들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원의 부족이 혁신의 단초로


영화, 드라마, 게임 같은 컨텐츠들의 성과를 보면, 결과론적으로 흥행한 작품들의 최소 절반은 큰 기대를 받지 못해서 대대적인 리소스 투입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돈이라는 자원은 가만히 두면 어떻게든 지출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관성이 있기에, 돈이 흘러넘치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쉽게 돈으로 해결하고 돈으로 사려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행위의 결과들은 대부분 놀랍지는 않습니다. 자원의 제약과 한계가 반대로 창의와 혁신을 촉발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고, 이는 2023년 꽤 여러 곳의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낸 소기의 성과에서 발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창업팀 입장에서는 다소 야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부족하고 빠듯한 자원이 주어졌을 때 역설적으로 창업팀의 실력과 혁신의 단초가 만들어집니다. 그 모습을 가장 잘 지켜볼 수 있었던 2023년 한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2023년, 패스트벤처스는 총 17건의 투자를 했습니다. 


2022년에는 20건 조금 넘게 했지만, 2023년에 건당 투자금액이 조금 더 커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페이스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23년부터 패스트벤처스가 조금 변화된 점이 있다면, 그간 소프트웨어 &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었던 투자의 범위를 바이오 헬스케어, 딥테크, 게임 등의 컨텐츠, 패션/뷰티 등으로 많이 넓혔습니다. 훌륭한 회사가 소프트웨어 & 서비스 분야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투자 방향에 적용시키고, 이를 위한 학습을 진행하고 관점을 세웠습니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해당 분야의 최고 투자수익을 내지 않는다는게 아이러니하지만 진실에 가깝다보니, 두려움 없이, 남들이 다소 위축되어 보일 때야말로 우리가 진입할 타이밍이라는 청개구리 정신에 입각한 결정이었습니다. 덕분에 투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고, 관심사가 넓어졌으며, 재밌는 소식과 읽을거리들이 넘쳐났습니다. 


투자자는 현명한 의사결정이 전부라고들 합니다. 더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려나가기 위해선, 우리의 과거 의사결정을 자주 돌이켜보며, 여러가지 각도에서 회고하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3년 패스트벤처스를 찾아주신 많은 창업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함께 하지 못한 팀에게도, 함께 하게 된 팀에게도, 2023년 한해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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