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패스트벤처스의 초기기업 투자펀드를 어떤 방식과 어떤 회사에 투자하고 싶은지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펀드 운영철학에 비추어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운영 방식에 대하여
첫 번째 펀드는 총 71억원 규모로 결성되어 약 8년간 지속됩니다. 다만, 초기 기업에 대해 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2020년과 2021년에 걸쳐서 투자를 모두 집행하고자 합니다. 물론 기간에 쫓겨서 급하게 투자한다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건당 최소 5천만원에서 최대 7억원까지 투자가 가능하며, 최대 7억원 범위 내에서는 첫 투자 이후 후속 라운드마다 follow-on 투자도 고려합니다. 저희는 Fund Returner가 될 만한 포트폴리오에 대한 지속적인 follow-on 투자가 벤처펀드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라 믿고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저희가 첫 번째 기관투자자가 되는 것을 선호하지만,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첫사랑의 기억이 강렬하듯이, 우리도 어떤 팀을 기관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굴하고, 또 가장 먼저 알아봐준 투자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Lead Investor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한국 초기기업 투자 생태계는 최근 5년간 급격히 발전하였고, 그 과정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 투자한 회사를 더 멋진 회사로 만드는데 힘을 합치기 좋은 파트너들이 다수 있습니다.
우선주 기반의 신주 투자가 원칙이나, 때론 보통주로 투자할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때론, 필요하다면 초기 단계이지만 구주를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좋은 회사일 경우 구주라는 이유로 피하지 않겠습니다.
좋아하는 회사에 대하여
많은 벤처캐피탈들이 자신들의 투자 기준을 이야기합니다. 또 많은 스타트업들이 벤처캐피탈에게 그들의 투자기준을 묻습니다. 하지만, 초기기업 투자는 너무나도 주관적이고 비정형성이 극대화된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들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투자가 이뤄지고, 또 미달이라고 해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스타트업들이 벤처캐피탈을 만나 잠재적 투자 가능성을 타진할 때, 마치 벤처캐피탈들이 내부에 체크리스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 중에 몇 개 이상을 만족시키면 투자가 되는 것이다 – 라는 식의, 벤처캐피탈이 가진 정답을 궁금해하는 식의 사고를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자연스러운 교류의 산물이며, 주관적인 확신의 결과물입니다. 정답을 맞추거나 점수를 올려나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벤처캐피탈들은 다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 벤처캐피탈에 속한 각각의 심사역과 파트너들의 취향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이들의 취향이 일관되게 투자 검토 과정에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지금까지의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 서술한 내용들은 그런 관점에서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인보다는 팀이 만든 회사를 선호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창업은 긴 여정이고, 그 여정은 과정이 너무도 힘들고 괴로운 일들 투성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고, 매 순간 내 스스로에게 한계와 실망을 느끼기 일쑤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 과정을 온연히 혼자 부담하기 보다는 그 짐을 나눠지고 갈 수 있는 동반자가 함께 하길 희망합니다. 성공 확률을 높인다거나 하는 이유라기 보다는, 창업자의 멘탈리티를 장기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내일이 다른 회사를 좋아합니다
실행력을 봅니다. 초기기업의 투자 의사결정은 첫 눈에 반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서서히 빠져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초기기업의 일주일은 일반 회사의 2-3개월과 비교할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 오늘 첫 미팅을 할 때 이야기했던 많은 계획들이, 다음주에 후속 미팅을 할 때 말이 아닌 행동의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회사를 만날 때 매우 흥분됩니다.
아이디어나 아이템이 아닌 스토리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아이디어의 가치는 Zero라고 생각하고, 창업은 끝내주는 아이템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아이템이라는 단어보다는, 누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고, 무슨 문제를 발견했고, 그걸 어떻게 해결해나가고자 하고, 그 과정에서 성과와 학습한 내용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소설책을 읽는 기분을 창업자와의 만남에서 느끼고 싶습니다. 우리의 의사결정과정은 한큐에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설득당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낯익은 트렌드보다는 낯선 도전을 원합니다
매일 같이 온갖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인공지능, 블록체인이라는 단어가 사업계획서에 포함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사양산업은 있어도 사양기업은 없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혁신은 특정 기술이나 특정 트렌드에 무관하게, 전 산업군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트렌디하지 않은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머뭇거리지 마시고 저희들의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디지털 기술의 적용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어떤 산업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이, 다른 산업에서는 기술 혁신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적용하고 있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향후 우리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해나가는데 있어 기술적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면 더욱 저희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단순히 데이터를 많이 모으고 나중에 머신러닝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지금 당장 반복되는 업무 프로세스의 자동화를 위한 간단한 기술적 요소의 적용부터 하는 팀을 선호합니다. 큰 일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