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와인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와인 중요 생산 지역 중 하나인
프랑스, 이탈리아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식적으로 유통과정이 짧은 곳이
중간 마진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원가에 가까운 매우 싼 가격으로 와인을 살 수 있게 되죠.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같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백화점, 마트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죠.
심지어 미국에서는 6만 원에 팔리는 와인이
우리나라에서 최대 27만 원에 팔리는 경우도 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와인이 유독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요?
또,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는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물이든 쌀이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건도 다 배송해서 먹을 수 있는 시대에
대체 왜 무거운 술은 직접 사서 마셔야 하는 거죠?
셀라브이 박혜정 대표 @패스트벤처스
흠..이 모든 게 궁금하시다면, 잠시 여기를 주목해주세요.
와인 DTC(Direct-To-Consumer)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
'셀라브이' 박혜정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Chapter 1.
혁신이 필요한 와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다
"본격적으로 말씀 나누기 전에,
먼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와인 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예요.
어쩌다가 창업에 뛰어들게 되셨나요?"
창업 아이템을 처음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시장의 크기'였어요.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시장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의 크기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는데요.
10년 이상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도 많은 성장을 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될 즈음,
처음으로 2년 이상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사로잡은 사업 아이템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인 관심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된
와인 및 주류 관련 사업 아이템이었죠.
개인적으로 와인을 좋아하기도 했고,
시장의 크기와 페인 포인트를 따져봤을 때,
와인 사업이 제게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와인 및 주류 관련 사업은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현재는 작지만 가장 큰 폭으로 성장해
미래에는 확실히 큰 규모가 될 시장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유통의 불합리가 명확해 시장 혁신이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어나야 하는 시장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어요.
또한 누구보다도 소비자 이해도가 높으면서
유사 사업 경험이 있어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 사업 아이디어였습니다.
"와인 시장의 페인 포인트를 느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대체 와인 시장에서는 어떤 페인 포인트가 있었나요?"
와인 시장에서 사업의 기회를 본 것은 세 가지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1) 배송 서비스
우리나라는 빠른 배송으로 유명하죠.
뭐든 배달이 된다는 점이 큰 강점인데요,
하지만 주류에 있어서만큼은 '주류 통신판매 규제'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배송이 불가능하죠.
*주류 통신판매 규제? 현재 정부는 주세법상 지역·전통주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류에 대해 온라인 또는 통신 판매 등 전자상거래와 배송을 금지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주류> 국세청 고시인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등으로 주류를 살 수 있는 경우가 있다. ① 주류의 통신판매 승인을 받은 전통주 ② 배달음식과 함께 술을 파는 경우 ③ 앱 등으로 주류를 주문받은 후 대면하여 주류를 인도하는 경우이다. 사실상 전통주의 경우에만 주류 제조업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술을 판매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이는 주세령과 65년 양곡 보호법 등으로 한국의 전통주를 살리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법이다.
국내 와인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주류 통신판매 규제로 인해 와인 및 주류의 유통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이 모든 경제적, 물리적 부담을
소비자가 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어요.
와인을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각 쇼핑몰 업체에서는
와인 가격을 공개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게 되죠.
와인 가격 명시가 불가능하면, 와인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소비자들이 직접 오프라인 매장을 돌아다니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발품을 팔 수밖에 없으니까요.
2) 구색
예전에 비해 와인의 다양성이 늘어난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와인'이라고 하면 천편일률적인 게 많았어요.
최근 우리나라 수입 신고 사이트를 통해
국내 수입된 와인 통계 데이터를 보면,
종류도 4만 5000여 개로 많이 들어왔어요.
예전에는 와인 종류가 2만 종 이하였거든요.
우리나라 주류 수입액(억 달러) 추이와 연도별 와인 수입액 추이 그래프. @관세청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와인 수입 규모도 성장세를 띄고 있어요.
관세청은 지난 2020년 와인 수입액이 전년보다 27.3% 증가한
3억 3천만 달러(한화 약 4,717억 200만 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와인 수입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수입량으로 따지면 5천400만ℓ,
와인병(750㎖) 기준으로는 약 7천300만 병에 달합니다.
이는 다양한 와인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고 있으며,
다각화된 취향과 선호도가 생기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죠.
현재 와인은 다른 공산품들과 달리 시장 성숙도는 올라가고 있지만,
이를 담아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부재합니다.
또, 소비자들은 와인을 구매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와인은 타 주류에 비해 롱테일(long-tail)적인 측면이 있고,
제품도 다양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개성을 충족시켜주려면
'온라인을 통한 서비스'가 일어나야 해요.
*롱테일
마케팅 용어로, 초기 판매보다 후반기 판매가
가늘고 길게 이어져서 중요해지는 현상
3) 가격
와인 가격은 크게 '비싸다'는 측면과,
'가격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문제로 꼽힙니다.
A 매장과 B 매장에서 구매하는 와인 가격은 천지차이죠.
생각해보면 소주나 맥주, 전통주의 경우 판매점별로
가격 차이가 크게, 비합리적으로 나진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가격을 알고 있고,
온라인에서도 적정 가격이 공개적으로 오픈돼 공유되고 있죠.
하지만 와인의 적정 가격은 소비자들이 모르고 있어요.
어딜 가야 싸게 와인을 살 수 있는지, 평균 가는 얼마인지 등이
온라인에 공개가 되어 있으면 편할 텐데,
와인을 구매하기 위해 소비자들은 매장을 직접 찾거나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데요.
소비자들은 모든 매장을 돌아다니며 가격 비교를 할 수 없으니,
와인을 사고 난 후 가격을 비교해보면
"비싸게 샀니, 잘 샀니"라는 말이 나오는 거거든요.
사실 말이 안 되죠.
비합리적으로 가격 차이가 많이 발생하는 건데,
와인에 따라 1000원, 2000원 차이가 아니라
1-2만 원에서 많게는 몇 십만 원 차이가 나기도 하니까요.
"오호.. 그렇군요!
듣고 보니 정말 와인은 불투명한 가격 구조를 가진 것 같아요"
수입 와인 판매 가격과 수입 가격이 최대 11배 차이 난다는 기사 갈무리. @네이버 뉴스
네, 와인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은
이 같은 가격 구조에 대한 불만이 커요.
그러나 현재 국내 규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온라인 결제 및 배송을 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셀라브이팀이 와인 DTC 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와인 시장의 페인 포인트를 혁신시키고,
소비자들이 좋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가격'의 비합리성을 풀어나가 보자는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Chapter 2.
한국에서 수입 와인이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뭘까
"같은 와인이더라도 해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가격이 훨씬 비싸네요.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와인 가격이
비싸게 팔리는 구조적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좀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과연 한국 와인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비싼 건가?"
라는 질문을 던져봤을 때, 제 생각에는 아직 대체로 비싼 편인 것 같아요.
실제로 현지가 대비 저렴하게 판매하는 와인도
종종 보이긴 하지만, 이는 극소수죠.
대부분의 와인은 아직 비싸게 팔리고 있어요.
그 이유는 '주세' 때문인데요.
우리나라는 와인에 매우 높은 세금을 부과합니다.
타 국가 대비 높은 세금(주세 30%, 교육세 10%) 구조가 크고요.
비싼 와인일수록 그 차이가 심해지게 되고,
부가세와 수입할 때 부과되는 관세까지 포함하면
와인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뛰게 되는 거죠.
EU 국가인 미국과 일본만 해도 주세가 낮으니
와인을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는 점 때문에
와인이 원가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질 수밖에 없어요.
또 수입사가 해외 와인 생산국에서 와인을 사 올 때 지불하는
'원가' 자체도 나라별로 다른데요.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에 비해서 아직 여전히
작은 시장 규모로 인해, 와인 생산자로부터 상대적으로
낮은 물량 협상력을 가지고 있고, 소싱가 자체가 높은 편이기도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물건을 많이 사는 사람에게
싸게 물건을 주잖아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수입량 규모가 작고, 땅덩어리가 작으니
지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애초에 소싱하는
원가 경쟁력 자체가 비교가 안돼요.
국내 와인 규모가 최근 2~3년 사이 급성장했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소비 시장 순위를 보면 와인 수입사들에게
아직까지 그렇게 주목받는 시장은 아닌 거죠.
소수의 대형 수입사를 제외한 중소형 수입사의 경우에는
아마 더욱 수입 원가 경쟁력이 부족할 테고요.
복잡한 중간 유통 구조도 꽤 큰 가격 상승 요인입니다.
와인을 수입할 때 보통 '수입사→도/소매상→소비자'
방식의 유통 과정을 거치는데,
와인 가격이 결정되는 기준은
수입사(40~50%) → 도매사(15~25%) → 소매사(3~40%)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쌓이는 유통 비용이 최종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는데요.
소싱가가 높아지면 결국 자연스럽게
와인의 최종가도 높아지는 구조가 됩니다.
또, 주류 통신판매 제한으로 온라인 판매가 어려우니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지 않으면
가격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 가격 비교도 쉽지 않습니다.
사실 와인은 소비자 입장에서 구매하기 어려운 주종에 속합니다.
생각해보면 국내 맥주나 소주 등은 어느 정도
가격이 합리적이다라는 기준이 명확한 편인데,
와인 가격은 천차만별이고, 종류도 매우 다양하니까요.
그래서 와인 시장은 오프라인 유통망에 의존하는 형태로
산업 전반이 형성되어 있어요.
각 유통 사업자들의 마진을 보전해주기 위해
암암리에 수입사 및 유통 채널의 가격 통제가 일어나기도 하고,
쉽사리 가격 정보를 노출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할 수 있죠.
@픽사베이
업계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겠지만,
일부 수입사들은 '가격 가이드라인'을 뿌려
판매가를 조정하기도 해요.
아예 와인 가격 가이드라인을 고정해놓고,
소매사가 이 가격 이상으로 싸게 팔게 되면
와인을 주지 않겠다는 압박을 가하는 식이죠.
소매사 별로 "어디가 비싸고, 어디가 싸네" 식의
와인 판매 가격이 공개되면 수입사 입장에서는
소매사 관리가 안되니까요.
그래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와인 동호회/커뮤니티 등에
와인 구매 영수증을 촬영해 올리거나 공유하는 문화가 있는데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매사에서는
'카메라 촬영 금지' 팻말을 붙여놓기도 해요.
소비자가를 유지하려는 수입사가 납품 단가를 올리거나
물량을 줄이는 걸 우려해서인데요.
와인 수입사가 소매사에 와인 가격 가이드라인을
뿌리는 것은 엄연히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되지만,
소매사 입장에서도 별 수가 없습니다.
싸게 팔고 싶은 양심적인 소매사도 수입사에게 와인을
공급받지 못하면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쉬쉬하게 되는 거죠.
그 외에도 보수적인 주류 마케팅 방식,
오프라인 채널 영업을 위한 많은 영업 인력의 인건비,
소량 다품종에 온도/습도 등 관리 등도 까다로운 와인 사업
특성상 높은 재고 및 물류비용 등도 가격 상승 요인들입니다.
"와인 마케팅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맞아요. 우리나라에 4만 종이 넘는 와인이 유통되는데,
평생 다 맛보긴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와인 애호가들을 제외한 일반 초보자들은
좋은 와인을 구별해내는 방법도 모르는 데다,
사전 조사를 하고 가도 눈으로만 봐서는 이것이
'달달한 와인'인지 '달지 않은 와인인지'조차도 헷갈려하죠.
와인을 혼자서 고르기가 어렵고, 판매점에서 평균 판매 가격보다
비싸게 샀다 하더라도 알 길이 없죠.
그런 이유에서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눈에 띄는 주류 마케팅 문화가 있습니다.
혹시 백화점 같은 곳에서 와인을 추천해주는 직원을 본 적 있으세요?
대부분 와인 수입사에서 보낸 영업 사원일 텐데요.
자신들이 수입해온 와인을 여러 매장에 납품하기 위해
영업 사원을 통해 입점 경쟁을 펼치는 겁니다.
또 소형 수입사들은 SNS나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영업하지만,
대형 수입사의 경우 프로모션을 해요.
예를 들면, 고급 샴페인이나 고급 와인을 판매하기 위해
'억' 소리 나는 돈을 들여서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는 거죠.
이 모든 비용이 와인의 가격 마진과 연결돼
와인 가격이 비싸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저는 이러한 방식이 굉장히 인력 의존적이고,
전통적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온라인에서 와인을 판매할 수 있다면
효율적인 마케팅을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겠죠?
와이닝 가격이 합리적인 이유: 유통 단계를 최소화하고 최저 수수료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셀라브이
그리고 소비자들은 모르는 와인에 대해서
아주 보수적으로 접근하진 않거든요.
좋은 와인임을 잘 설득시키면, 소비자들은
충분히 마셔볼 의향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물어보신다면 저는
고도화된 이커머스의 마케팅 방법론을 이식하면
잘 팔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요.
"네? 이커머스 마케팅 방법론이요?"
와인 수입사들은 이커머스 DNA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셀라브이는 이커머스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박혜정 대표는 서울대 미학과 졸업 후 네모 컨설턴트, 티몬 BO(브랜드 오너)를 거쳐 메쉬코리아, 캐치패션 등에서 전문적인 업무 경력을 쌓은 바 있습니다
Chapter 3.
근데 전국 유통망 갖춘
대기업이 유리한 싸움 아니야?
GS25 주류 특화형 플래그십 스토어 '플래닛(왼)', 보틀벙커 제타플렉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오) @GS25/롯데마트
"그런데 모든 와인이 비싼 건 아니지 않나요?
현지가 대비 저렴하게 판매하는
와인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네,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무조건 모든 와인이 비싸다고 볼 수는 없죠.
극소수의 대중적인 와인들은 현지가 대비 싸게 팔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신세계 L&B 등의 대형 유통사에서
와인 가격을 낮추기 위해 해외 와이너리와 협상하고,
와인을 대량으로 수입해오는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이렇 싸게 파는 와인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수백만 명씩 팔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이 많이 없고,
플레이어도 한정적이죠.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이너리 풍경. @박혜정 셀라브이 대표
특히 요즘에는 와인이 대중화되면서 소비 행태도 다각화되고,
좀 더 새롭고 독특한 와인에 대한 니즈(needs)가 생기다 보니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와인 가격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셀라브이와 같은 작은 스타트업이 진입을 해도
'해볼 만한 싸움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최근에는 스마트오더 방식을 통해 온라인 판매가 부분적으로
가능해지며 와인 가격 비교가 조금씩 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지난 2020년 3월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소비자가 주류를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구매하고,
원하는 매장에서 찾아갈 수 있는 스마트 오더 시스템이
가능해진 것 역시 와인 시장의 큰 변화 중 하나죠.
<스마트오더 개정법(국세청)> 주류 스마트오더의 등장으로 인해 대형마트, 편의점, 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에서 판매하는 수입 와인의 가격이나 할인 정보 등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음. 2020년 4월 3일부터 음식점이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을 운영하는 주류 소매업자는 별도의 승인 없이 소비자에게 휴대전화 앱 등을 이용해 주류를 판매할 수 있게 됨. 단, 위의 서비스는 주류를 주문 및 결제한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방문해 판매자와 대면해 인도받는 것을 전제로 함. 통신수단을 이용한 줄 판매를 모두 허용한 것은 아님.
"그런데 사실 대기업들이야말로 유통 인프라가 잘 깔려있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대기업이 스마트오더
와인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류 스마트오더의 등장으로 인해 편의점 등의
유통체인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은 실제 와인 관련 사업을 하는데
가장 앞서 나가고 있긴 하죠.
대형마트를 비롯한 편의점, 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에서
판매하는 수입 와인의 가격이나 할인 정보 등도 비교할 수 있게 됐고요.
스마트오더 개정법 이후, 편의점의 와인 매출은
코로나19와 맞물려서 300%씩 성장하고 있어요.
아직 시장이 엄청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주류 스마트오더 및 픽업 서비스 행위 자체는 성장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관련 규제에 대한 쟁점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와인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추후 국내 주류 규제 관련 전망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스마트오더 등장으로 규제가 어느 정도 완화됐고,
코로나19 이후로 홈술 시장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에
시장을 혁신할 수 있는 타이밍이 이제는 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규제가 완전히 풀릴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해요.
지금은 전통주에만 국한해서 규제를 풀어주고 있는데,
규제를 풀거면 공정하게 다 풀어줬으면 하는 게
업계의 희망사항이죠.
여기서 잠깐! 궁금하지 않나요? 왜 한국은 주류 온라인 판매에 규제가 많은걸까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어요.
1)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음주는 국민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
2) 온라인에서 다양한 정보에 노출된 만큼 청소년들이 불법으로 주류를 구매할 수 있다는 우려
3) 슈퍼마켓, 편의점 등 골목 상권 안정과 상생을 위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주류 온라인 판매 금지와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에서는 이미 주류 배달이나 배송 관련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있고, 새로운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주류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 중에 있어요.
주요 국가별 주류 온라인 판매 현황 표. @한국노동연구원
우리나라는 와인 생산국가가 아닌 소비국가로써
아직까지 더 성장할 부분이 많이 남았다고 봐요. 또 와인은 식문화와 결부되어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와인 산업 성장 곡선이나 잠재력을 생각해봤을 때,
가장 벤치 마크하기 좋은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해요.
Chapter 4.
비합리적 가격 구조 지닌 와인 시장,
DTC 서비스로 혁신한다
"그럼 앞서 대표님께서 머릿속에 그려왔다던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
'셀라브이'에 대한 짧은 소개 부탁드려요."
'숨겨진 보물 와인 찾아라' 셀라브이 와이닝(wining) 서비스 홈페이지 갈무리. @패스트벤처스
"셀라브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품질 와인을
발굴해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와인 DTC 플랫폼입니다."
*DTC 서비스?
제조사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간 유통 단계를 제거하고 온라인 자사몰,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
"소비자의 편리한 와인 구매 경험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최근 셀라브이는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와인을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국내에 수입된 와인을 도매·소매 등의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수입사에서 바로 소비자에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와이닝' 서비스를 출시했어요."
셀라브이가 출시한 '와이닝' 서비스 이미지. @패스트벤처스
"구체적으로 어떻게 DTC 서비스를 하겠다는 건가요?
주류 통신판매 규제로 인해 온라인 배송 자체가 안될 텐데요."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스마트오더'를 이용해서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을 주문할 수 있고,
주변 음식점 & 매장에서 와인을 직접 픽업하는 방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셀라브이도 우선 스마트오더 시스템을 활용할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 저희가 꿈꾸는 그림은 직접 와인 수입을 해서 다이렉트로 엔드 유저(end-user)에게 판매하는 커머스에 가까워요. 하지만 이 같은 구조를 만들고, 수입 및 판매까지 가려면 호흡이 긴 사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수입사 라이선스도 준비해야 하고, 동시에 수입할 와인을 셀렉하고, 소싱을 위한 영업이 필요한데요. 현재는 국내 수입되지 않은 품질 좋은 가성비 와인을
소싱해오는 일에 가장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혜정 셀라브이 대표가 다녀온 해외 와이너리들. @박혜정 대표
"지난 8월 웹 형태로 출시한 와이닝 베타 서비스
첫 번째 프리오더 한정 판매 성과가 어떻게 되나요?"
당시 준비했던 와인이 모두 완판 됐어요.
이때 느꼈던 점은 로열티 있는 비싼 와인을 구매하시는 분들은
객단가가 높고, 재방문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이런 고객 분들은 하루에도 1~2번씩 저희 홈페이지에 접속해,
오늘 새로 업로드된 좋은 와인이 있는지 확인하더라고요.
빨리 사지 않으면 품절되니까요.
많이 구매한 고객 중에는 2주에 200만 원을 결제하신 분도 있었어요.
"와.. 큰 손 고객님이네요..(동공 지진)
그럼 좋은 와인은 어떻게 발굴 및 소싱 하나요?"
사실 와인을 수입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해외 소싱'인데요.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힘든 일이거든요.
당시 와이닝 베타 서비스를 운영하며
여러 와인 생산자를 소개받았고,
많은 네트워킹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법인 설립 전에는 해외 다양한 와이너리 투어를 많이 다녔고요.
요즘은 직접 구글링 하거나, 파트너사들에게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적합한 가격과 스타일, 품질 좋은 와인을
미리 서치 해놓고, 해외 출장 가기 전 미리 와인 생산자들에게
미팅을 요청하고, 계약을 맺게 될 것 같아요.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짐에 따라,
최근 와인 시장이 와인 애호가-가성비 소비자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공감하시나요?"
와인 시장에서 가성비는
비싼 와인에도 적용되고, 싼 와인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전체 와인 시장에서 약 80~90%는 중저가 와인을
구입해서 마시는 분들이에요.
와인 애호가들도 매일 비싼 몇 백만 원 하는 비싼 와인을
마실 수 없잖아요, 아닌가?(웃음)
"크흠...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 있죠 재벌이 아니면ㅋㅋ
그럼 대표님께서 생각했을 때 이 사업 모델에 있어서 가장 챌린징 한 포인트는 어떤 게 있을까요?"
셀라브이 박혜정 대표. @패스트벤처스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와인을 벌크(bluk)로 가져오는 일이예요.
셀라브이가 하려는 것은 결국 합리적인 가격에
복잡한 유통 마진을 최대한 버리고,
'납득할만한'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는 게 목표입니다.
원가 경쟁력이 생기려면 기본적으로 와인을 많이 가져오고, 많이 팔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많은 와인을 가져오긴 힘드니
초반에는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두 번째는, 소비자 풀을 늘리는 일입니다.
저희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한 두 푼의 이익보다
와인 DTC 구조의 비즈니스가 실제로 가능하도록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비자 풀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와인 원가를 낮추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와인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크게 '와인 가격 자체의 협상을 얼마나 싸게 잘하느냐',
'물류비를 어떻게 낮출 것인가' 두 가지 포인트에서 결정된다고 봐요.
셀라브이는 가장 좋은 품질의 와인을
가장 낮은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원가를 낮추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Chapter 5.
셀라브이의 NEXT
"셀라브이는 어떤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인가요?
대표님의 궁극적인 목표도 궁금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셀라브이는 복잡한 유통 구조의 가격 거품을 없앤
최초의 와인 DTC : 와인판 '에버레인 + 코스트코' 모델을 꿈꾸고 있어요.
기존의 유통구조로 가격 거품이 끼어있던 제품군에서
유통을 DTC로 단축시켜 가격 합리화를 하겠다는 건데요.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는
에버레인(의류), 와비파커(안경), 달러쉐이브클럽(면도날) 등을
꼽을 수 있어요.
에버레인의 티셔츠 메이킹 코스트 @애버래인 텀블러
<해외 대표적인 DTC 스타트업 사례> *에버레인(Everlane): 온라인 중심의 의류 브랜드. 2010년 공동창업자인 마이클 프리즈먼과 제스 프레이머가 남성 의류를 중심으로 설립했다. 기본적인 의류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목표로 투명한 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와비파커(Warby Parker): 안경테가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창업을 한 와비파커는 당시에 지나치게 비싼 안경을 온라인으로 판매해서 유통 단계를 줄이면 저렴하게 팔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에서 통상적으로 판매되는 안경 가격의 약 5분의 1 수준인 95~100달러에 안경을 판매한다. *달러쉐이브클럽(Dollar Shave Club): 면도날 배달 서비스업체. 마이클 더빈(Michael Dubin)이 2010년 창업했다. 요즘 면도기는 너무 비싸다는 슬로건을 내걸며 유료 구독회원을 확보해나간 이 스타트업은 'DTC' 혁명의 시작이라고도 불린다.
와비파커, 달러쉐이브클럽, 에버레인 모두
설립 당시부터 DTC 방식으로 시장 혁신을 노렸죠.
기존 대기업들의 판매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는게 특징입니다.
셀라브이도 가장 혁신적 패션회사라 불리는 에버레인과
안경판매의 혁신을 만든 와비파커와 같이
마켓에서 중간 유통을 없애고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와인을 제공함으로써 DTC 브랜드를
구축해나갈 예정입니다.
이밖에도 셀라브이는 픽업 서비스와 함께, 박스 구매가 가능한
최저 비용의 오프라인 아울렛(코스트코와 같은 창고형 매장 형태)을
병행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창고형 할인매장 '코스트코'처럼 매장 인건비나 인테리어를
과감히 줄이고, 대용량 포장 제품처럼 번들링(bundling) 형태로
많이 사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아마 사업 초반에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아울렛처럼
물류를 겸할 수 있는 형태가 가능해진다면
빠른 시일 내에 물량 경쟁력이 나올 수 있다고 봐요.
위치도 땅값이 비싼 지역보다는 교외라고 하더라도
주차 공간이 확보되고 면적이 넓은,
'입지'가 괜찮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투자 유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주류 수입을 위해서는 주류 수입면허가 필요하고,
소매 면허와 수입사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현행법상 창고 등의 물리적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여기에 필요한 비용과 와인 구입 비용, 인건비 지급 등을 위한
비용을 펀드레이징 할 예정입니다.
셀라브이 '와이닝' 서비스 장점. @와이닝 홈페이지 갈무리
"마지막으로 가을에 어울리는, 대표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와인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네비올로 품종의 와인을 추천드려요.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와인으로 시작해서
이탈리아 와인의 매력으로 처음 입문하게 된 계기가 네비올로인데요.
색깔은 마치 피노누아처럼 맑고 여린 느낌인데,
마시면 입 안을 강하게 조이는
타닌의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와인입니다.
말린 장미, 타르, 버섯 등의 복합적인 향이
향수처럼 피어오르는 분위기 있는 매력과,
너무 무겁거나 진득하지 않은 레드라는 점에서
딱 지금처럼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에
잘 어울리는 와인이지 않을까 싶어요.
양념이 강하지 않은 육류나 트러플 파스타 등과의
페어링을 추천드립니다.
네비올로 품종의 가장 대표적인 와인이 바롤로인데요.
바롤로는 대부분 가격이 비싼 편이고
잘 익은 빈티지를 구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라벨에 랑게(Langhe)라고 적힌 네비올로 품종의
와인을 구매하신다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드실 수 있을 거예요.
Interviewer. 김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