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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태원호

‘콜럼버스의 뚝심’을 찾습니다


요즘 콜럼버스 스토리에 꽂혀 있습니다. 그동안은 ‘담대한 비전을 가진 창업가(콜럼버스)가 좋은 투자자(이사벨 1세)를 만나 성공한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비하인드를 살펴보니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더군요.


1483년, 콜럼버스는 원대한 항해 계획을 들고 첫 IR 피칭을 합니다. 그가 처음 만난 투자자는 스페인이 아닌 포르투갈이었습니다. 당시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에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포르투갈 사람이었고요. 서회항로 투자 첫 피칭 대상이 포르투갈 왕실이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절호의 투자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주앙 2세는 콜럼버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콜럼버스의 계획은 허무맹랑 그 자체였거든요.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1만 킬로미터 짧게 계산했습니다. 똑똑한 포르투갈 검토위원회는 그의 계획이 비과학적이며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했고 당연히 투자는 드롭됐습니다.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을 떠나 스페인으로 갑니다. 스페인에서는 국왕에게 제안서가 올라가기도 전에 왕실위원회에서 기각되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본 투심 올라가기도 전에 예비심사 단계에서 탈락된 셈이지요. 두 차례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콜럼버스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1486년에는 스페인 국왕에게 직접 제안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영국, 프랑스와도 접촉했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더 흘렀습니다.


1492년, 최종적으로 스페인 이사벨 1세의 승인을 얻으며 콜럼버스는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처음 탐험 계획을 발표한 이후로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끝에야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페인으로부터 투자 받는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궁정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근본도 알 수 없는 사기꾼 취급을 하며 투자에 반대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사벨 1세가 투자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스페인의 대내외적 상황도 분명 있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콜럼버스가 오랜 기간 보여준 뚝심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잘못된 믿음일지언정) 콜럼버스는 본인의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10년의 거절을 버텨냈습니다.


이사벨 1세의 마음은 아마도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콜럼버스는 무모하지만 절대 포기할 사람은 아니다. 평생 유럽 전역을 돌아서라도 언젠가는 투자 받아 배 타고 떠날 사람이다. 그 뚝심에 베팅해보자”


저희 역시 누군가에게는 주앙 2세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콜럼버스처럼 포기하지 말고 계속 두드려주세요. 무모하지만 뚝심 있는 창업가 분들의 이사벨 1세가 될 수 있도록 패스트벤처스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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